【행복할 권리】 한갓 깨고 나면 꿈인 것을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4.03.15 09:00 의견 0

강릉까지 가는 차표를 끊었다. 기차가 출발을 하려면 두 시간 반이나 남았다. 부러 새벽에 도착할 수 있는 차표를 끊은 것이다. 청량리 역 대합실의 의자에 앉았다. 두 시간 반은 너무 길다. 그렇다고 강릉에 가서 냄새나고 불결한 여관방 잠을 자고 싶지는 않았다.

시간을 보니 열 시 였다. 걸망에 책은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그렇다고 책을 꺼낸다 해도 눈에 들어올 거 같지 않았다.

역 광장으로 언제부터 인지 싸락눈이 내렸다. 곳곳에 총을 든 군인들이며 탱크며 장갑차가 서성이고 있었다. 눈과 비가 아스팔트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며 저희들끼리 어깨치기를 해대며 바람에 으스스 춥기까지 했다. 그것들은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머리카락이며 어깨 위로 어둠과 함께 좌절과 절망, 슬픔 같은 것들로 계엄군처럼 주둔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선,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경적음만 울리며 나아가지 못하는 차량들. 나는 한동안 그런 것들, 바쁘게 오가는 것들, 지친 것들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길바닥은 비와 눈이 떨어져 네온사인 불빛으로 번들거렸다.

점심도 먹지 못해 출출했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유 하나, 빵 쪼가리를 사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우걱우걱 먹고 싶지 않았다.

어디 가서 뭘 좀 먹어야 하는데, 하며 걸망을 추켜메고 광장 왼 쪽으로 나왔다.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창녀촌이 나왔다. 그 입구에 허름한 해장국집이 하나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소주 한 병요.>

내가 들어가 의자에 앉자 사람들이 힐끔거렸다. 손님들의 삼분지 이는 뜨내기들 같았고 나머지는 그 근처에 목을 매고 사는 이들 같았다.

발을 빼려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의식은 무지, 칠흑 같은 암흑 허무의 구렁텅이였다. 무명 번뇌 속을 헤매었다. 잘 먹고 잘 살려고 중이 되지는 않았다. 숱한 미망의 허방과 막다른 길들이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고통과 재앙 같은 승가였다. 주소불명, 신원 불명. 지식 예비군 하나가 허름한 국밥집에 앉아 성에가 잔뜩 낀 유리창 밖으로 내리는 싸래기 눈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비승비속으로 가자.>

다행이었다.

씹히는 깎두기의 맛이 삼삼했다. 씹으면 으깨지고 부서져 아삭거렸다. 국물 또한 뼈에다 시래기를 썰어 넣고 한참을 끓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흐물흐물한 건데기도 맛이 있었지만 곰삭은 국물의 목넘김이 부드러웠다. 편도선이 부어 목이 따끔따끔하고 부어 있던 것이다.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그래도 시간은 가지 않았다. 벽에 걸려 있는 시계는 열 시 삼십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느새 취기가 불씨가 되어 얼굴은 빨갛게 단청이 되고 있었다.

나는 내 옆에 앉아있는 걸망 위에 손을 얹었다. 걸망은 눈과 비를 맞아서인지 축축했다.

소주 한 병은 내가 마시는 거고, 또 한 병은 걸망 속에 든 뼛가루를 위한 거였다.

<바다에 함 가기로 했는데, 못 갔네. 사형, 마셔.>

<인마, 난 끊었다니깐.>

사제(師弟)는 대구 내게 소주를 권했다.

<그렇게 태어남은 고통이고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없는 부조리함 속에서 벗어나 한 줄기 빛을 보고 싶었어. 컴컴한 어둠 속에서 어둠의 세계를 깨트리고 또 한 미륵의 세계 그 희망이라는 일곱 가지. 그 고운 무지개 색을 보고 싶었다고. 나는 이 기득권의 세상, 자본의 세상을 깨뜨릴 수 없었어. 형은 내게 그 불행한 행복을 받아들이라고 했지만 정작 개안(開眼), 새로운 삶을 꽃 피우는 게 불가능하단 걸 알았지. 결국 앙상한 거죽과 의식만이 어둠 속에 부유했을 뿐이야. 내게 승가는 투쟁이었지만.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군지, 어디에서 나와 어디로 가고 있는 지. 어떻게 승가까지 흘러 들어오게 되었는지. 無라는 건 말야. 깨달음, 그건 기상 천외의 착안(着眼)에 빠져 궤변(詭辯)의 숲속에 빠진 거였어. 그것은 개벽, 혁명을 위해 신세계, 미륵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허무에 죽음으로 빠져드는 길만 같았지.>

허무와 허탈의 분노로 치를 떨던 사제(師弟)의 뼛가루를 강릉 바닷가에 뿌려주고 돌아오던 길은 멀었다.

<이거 스님 꺼라고 그러던데요.>

통장과 도장이었다(금융 실명제 이전이었다. 통장과 도장만 있으면 돈을 찾을 수 있는).

<엄마, 수술비가 없다 해서 준 건데.>

<스님의 노모가 수술도 하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대요.>

강릉까지 동행 중 한 마디 말도 없던 사제(師弟)의 애인은 마지막 헤어지며 내게 통장과 도장을 내밀었다. 그 동안의 인세와 원고료로 받았던 통장이었다.

<왜.... 그냥 쓰지. 위자료로.....>

큰 키에 한 눈에 봐도 미모였던 그녀의 큰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빈 손으로 왔다 빈 손으로 가는 길인 걸 요. 그러긴 제 업보가 너무 지중했던 지라..>

그리고 그녀는 입산 했다고 들었고, 이후 연락은 없었다. 그렇게 그날처럼 눈과 비와 바람이 부는 날은 가끔 사제(師弟)생각과 함께 그녀는 잘 살고 있을까, 중노릇 잘 하겠지, 하는 마음에 쓸쓸히 싸래기 눈 내리는 차창 밖을 멍하니 내어다 본다.

아무래도 날 잡아 강릉바다에 소주 한 잔 뿌려주러 한번 다녀와야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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