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사람이 부처다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4.03.12 09:00 의견 0

내가 좋아하는 게송이 있다. 문수보살의 게송이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面上無嗔供養具 면상무진공양구)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口裡無嗔吐妙香 구리무진토묘향)

깨끗해 티가 없는 그 마음이 보배요 (心裡無嗔是珍寶 심리무진시진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 일세 (無染無垢是眞常 무념무구시진상)

나는 가끔 무애도인들을 만나곤 한다. 그네들을 보면 마음을 전달 받을 수 있다. 이상하게 끌리는 것이다. 거칠거나 막힘이 없는 무애자재한 얼굴이다. 매력적이고, 매혹적이다.

이사무애(理事無碍)란 진리의 세계(理)와 세속의 일(事)이 서로 장애가 되지 않고, 서로 방해가 되지 않고, 서로 거리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사무애(事事無碍)는 현상계 만유의 낱낱 사물이 서로 상통하여 막힘이 없을 뿐 아니라 현상 차별계 사이에서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우주의 실체는 서로 얽히고 설킨 관계의 고리로 엉켜 있어 둘이 아니다, 라 한다. 즉 본체를 떠난 형상이 없고 형체를 떠난 본체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리의 세계는 깨달음의 세계, 해탈, 열반의 세계다. 성 안내는 그 얼굴, 부드러운 말 한 마디는 <누구든 일체중생희견(一切衆生喜見) 여래가 되리라.>하는 것이다.

그렇게 법당에서 염불을 하다 멈추기도 한다.

그리고 멍하게 상단을 올려다본다.

문아명자면삼도(聞我名者免三道) 내 이름을 듣는 이는 삼악도를 면하고

견아형자득해탈(見我形者得解脫) 내 얼굴을 보는 이는 해탈을 얻네.


염불을 멈춘 부분이다. 부처님을 만난 듯 순간 큰 기쁨이 밀려온다. 그리고 나는 미친 놈처럼 씩 웃는다. 희견(喜見)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

< 일체중생희견을 바라옵니다.>

희견(喜見)보살은 얼마나 모습이 장엄하고 선하였던지 누구든 이 보살님을 잠깐 보는 것만으로 큰 기쁨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이 희견. 기쁘게 보는 보살이다. 이렇게 원을 세우고 수행을 하자, 희견보살은 몸을 자유자재로 나투는 색신삼매를 얻었고, 어린아이가 필요한 곳에는 어린아이로, 상인이 되어야 할 때는 상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가장 적합한 모습으로 나타나 중생의 슬픔을 덜어주고 기쁨을 주었다고 한다.

물론 경전의 문학적 과장, 뻥일 수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아, 좋다,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다. 그렇게 눈물, 땀. 사람냄새 나는 이들은 아름답게 까지 느껴지곤 한다.

맑은 사람 밝은 사람. 화를 내지 않는다 욕심부리지 않고 가만히 미소지을 뿐. 소욕지족. 적은 건데도 마음이 가득 담겼다고 기뻐한다. 무골호인 처럼 웃는 얼굴이다. 무엇보다 다정한 얼굴이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다. 만나면 헤어지기 싫은 사람. 헤어졌다 해도 그리워 빨리 보고싶은 사람이 있다.

<누구든 내 이름을 한번 듣기만 해도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하고 원을 세운 관세음보살이 연민심으로 가득찬 분이었다면, 희견보살은 '누구든 나를 한번만 봐도 기쁨을 얻기를' 하는 유쾌함이 가득한 보살이다.

성 안내는 부드러운 말 한 마디, 이 땅의 관세음보살들, 이 땅의 희견보살들이다. 법당에 앉아 있는 금부처가 돌부처가 부처가 아니라 이그러지고 찌그러진 우리가 바로 부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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