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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청산이 좋아 청산에 산다
어찌 인연이 되어 푸릇푸릇한 청산에까지 기어올라와 살게 되었다. 그리하여 산짐승, 곤충들과 머루랑 다래랑 사는 참 기이한 인연이다.산자드락에 들어와 내가 떠받들고 사는 당신이 젊은 날에는 그리도 끔찍할 때가 많았다. 하도 끔찍해 몇 번이나 산을 내려갔는지 모른다. 세상엔 강도 있었고 바다도 있었다. 왜 이렇게 살아, 하고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9.10 00: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당신 삶의 최고 화두는 무엇인가?
산을 오르는 이들에게 가끔 물어본다. 대답은 거개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답은 그렇게 둘로 직업과 존재에 대한 사랑의 깊이에 따라 경계가 나뉜다. 딱 잘라 말하면 나물인 경우와 밥인 경우다.화두는 ‘말(話)보다 앞서는(頭) 것’을 뜻하는데, 말 그대로 생각이나 말을 떠올려내기 전에 사유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금세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9.03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깨달음에 관한 논쟁
오래전, 불교계에서 돈오돈수(頓悟頓修)인가’, ‘돈오점수(頓悟漸修)인가’라는 자유로운 논쟁을 벌여 재밌었던 적이 있다. 편견과 독단 없이 나는 그저 장외의 관중, 관객으로 그 양쪽 진영의 논쟁을 보면서 행복해 했던 적이 있다. '돈오(頓悟)'는 단박에 깨닫는 것을 의미하고, '점수(漸修) '는 점진적인 수행을 말한다.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8.27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소설 쓰는 것도 화장(化粧)하는 일이고 해탈(解脫)하는 일
풍장(風葬) 1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8.21 11:1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잘 가라, 나를 떠나가는 것들
길 위에서의 생각 류시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8.13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만행(萬行), 진정한 여행
진정한 여행나짐 히크메트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8.06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아직, 살아 황홀하다
장마로 고추 탄저병 기미가 보였다. 마을 어르신이 락스를 뿌리라는데, 먹는 거에 그럴 수는 없고 부랴부랴 약을 구입해 뿌려주었다. 마을 어르신의 조언대로 급하게 이랑과 이랑사이 고랑에 잡초매트를 구해 깔았다.그제는 번쩍 번쩍 내 머리 속으로 가슴으로 번개가 내리쳤다. 천둥과 벼락이 그렇게 밤과 함께 울었다. 물벼락, 물폭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7.30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장마, 장대비를 바라보고 있는 너는 누구이고 무엇인가?
관시하인(觀是何人)심시하물(心是何物) 그대는 무엇을 보는 놈인가? 보고 있는 너는 누구이고 무엇인가? 어느 우기, 걸망끈이 어깻쭉지를 파고 들 쯤이었다. 삼십 대 초반이었고 신원불명, 주거부정의 만행중이었다. 슬픔과 허기짐에 지친 비들이 꼬리를 휘휘 돌리며 주룩주룩 내 청춘 속으로 쏟아지는데, 고속버스터미널에 비를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7.23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오늘도 쪽배를 타고 깨달음의 바다를 건너려는데 사제(師弟) 둘이 왔다."보이지 않는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의 실상이죠?" 불쑥 선문답 같은 걸 던졌다. 쫓기듯 끌리듯 살아온 나는 아무 대답이 없다. '아직도 여정은 멀어. 네 안에 세상이 있는 거지, 세상을 위해 네가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런데도 눈 뜨면 지옥이지?'하며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7.16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봄에서 여름으로 오는동안, 뻐국새 그리 울더니 요즘은 앞산뒷산에서 홀딱벗고새가 운다. 검은등지빠귀. 검은등뻐꾸기.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에 사랑도 홀딱벗고 번뇌도 홀딱벗고, 물처럼 바람처럼, 하며 노래를 불러 희미하게 미소짓는다.오늘은 어디서 헤맬까. 장마가 오기 전에 고추밭 두 번째 줄을 매주어야 하고 고추, 토마토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7.09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인생 잘 살다 간다는 거
think & thinking. 새로웠던 한 해가 또다시 반으로 접어들었다. 뭐했나? 피식 웃어본다. 가뭄이다. 뜨거운 햇살에 농작물이 타들어간다.나의 아침 일과는 물 주기다. 비소식은 토요일 날 시작해서 월요일까지 온다고 되어 있다. 극심한 가뭄 뒤에는 꼭 장마가 오곤했다. 물 준다고 주었는데도 곳곳에 고추가 말라 죽은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7.02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산이 좋아 산에서 산다
얼마전 도반이 찾아와 바다엘 가자 했다."......뜬금 없이 바다는?" "바다에 나를 놓아주러." 픽 웃었다. '스님아. 그런 너는 어디 있는데?'라는 물음대신 도반의 눈을 보았다. "......가자." "어디로?" 도반이 보챘다. '가긴 어디로 가? 나이 칠십이 다 되어 가지고. 인간아. 바로 여기가 목숨의 바다고 화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6.25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사랑하다 죽어버려라
뭐해요?사랑해. 웬일? 바다 씬이 있어 촬영하고 올라가다 생각이 나서요. 무슨 죄가 많은지 고추 끈을 오늘에서야 맸다. 고추 끈을 매는데 삼십 년 지기인 여배우가 왔다. 그녀에게는 여성성과 모성애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소설 안 쓰시고요? 법당에 참배를 하고 나와 고추밭에 서서 묻는다. 되도 않는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6.18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감꽃
감꽃문병우 둥근 해 밑에서 고독, 했더니 해가 고독 글자를 태워버린다 홀로라는 문장도 믿지 말거라 외롭다는 문장 그립다 할지니 장독에 감꽃 몇 떨어져 보이나 보여서 어찌할거나 해, 나, 감꽃, 장독 무얼 주인으로 적을거나 좁아들어도 非문장 늘어나도 非문장 고독, 술안주는 되나요? 안주는 하되 감꽃 놀라게는 하지마라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6.11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적심(摘心), 고추 방아다리 따기
"음, 고추가 많이 컸네."앉을뱅이 동그란 의자를 놓고 고추밭에 앉았다. 올해, 고추는 그리 많이 심지 못했다. 고추 모종 여덟 판을 심었다. "믿음은 종자요, 고행은 슬픔(悲)이며, 지혜는 내 멍에다. 호미, 부끄러움은 괭이자루이며, 의지는 잡아주는 줄, 생각은 호미날과 작대기이다." 뻐꾸기들이 학명스님이 쓴 선원곡을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6.04 08:25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나는 왜 매번 부처가 되는 걸 실패할까
하안거 입제다. 어제였다. 산밭에서 고구마를 심고 있는데 사형 두 분이 먼 길 오셨다. 그리고 물음을 던진다. 하고 대답하려다, 라고 대답했다. 농사에 그렇게 시간을 많이 쏟고 언제 수행하려는 거냐는 물음이다. 속납 일흔 넷의 사형이 말문이 막히는지 빙그시 웃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5.28 08:39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다락방이 있는 집
다락방이 있는 집-homo cupiens-* 김추인 깊으나 깊은 내 안, 무허가의 오두막 한 채 그대 모르지 늑골 밑 붙박이로 지어 숨긴, 길 없는 외딴집 비 오면 오는 대로 오도카니 빗소리나 듣다가 폭설 흩날리면 사무치게 그대 꺼내 안고 눈폭풍 속을 걸어 나가는 아마도, 그래 아마도 오래 반짝이다 사윌 설화 한 토막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5.21 09:00
행복할 권리
【행복할 권리】 센베과자
센베 과자조현석 새벽녘 이불 박차고 나와 머리맡에 놓인 누런 봉투를 연다 부채처럼 펼쳐진 바삭한 과자를 점점이 김가루가 뿌려진 바깥부터 야금야금 부숴 먹는다 너무 일찍 일어나 단칸방 곳곳을 누비며 소란스럽던 어린 나를 위해 아버지가 간밤에 사들고 온 것이다 달콤하고 맛난, 졸린 눈을 비비며 먹는 과자 밤새 방안 가득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2024.05.1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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