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풍경소리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4.03.05 09:00 | 최종 수정 2024.03.05 10:53 의견 0

나는 복이 참 많은 사람이다. 산에서 살기 때문이다. 봄이면 먹을 게 지천이다. 내가 머무는 산은 그리 높지 않다. 그리 날카롭지도 위협적이지도 않다.

냉이, 달래, 돌미나리, 돌나물, 참나물, 두릅, 민들레, 취, 매실잎 그 수를 셀 수도 없다. 이거 저거 따다 넓은 양푼에 고추장 넣고 썩썩 비비면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 그러니 어찌 청산을 사랑하지 않을 쏜가.

성격이 먹는 걸 그리 밝히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겨울에도 필봉(筆峰)을 바라보며 봄을 기다리는 건 봄나물 잔치를 하고 싶은 마음이다.

지난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춥게 느껴졌었다. 안거기간 내내 쓰고 지우고 고치고 다시 쓰고, 반복하는 불면의 밤들이었다. 그런 날이면, 봄이 되면 냉이를 캐야지, 냉이를 캐서 말린 표고에 흐르래기 버섯 조금, 된장 한 숟갈 넣고 자글자글 끓여 국수를 따로 삶고 그 냉이육수에 국수를 넣어 냉이 물국수를 해먹어야지, 하는 봄이 오면 봄을 만끽해야지, 하는 마음에 그 긴 겨울을 버틸 수 있었다. 국수 한 젓가락 뜨고 돌나물을 뜯어 초고추장에 무침한 그 놈을 입에 넣으면 그렇게 물컹 봄이 씹히곤 했다.


무침만 좋은 게 아니었다.

내 머무는 암자 앞을 흐르는 무심천으로 내려가면 골짜기에 돌나물 천지다. 그러니 나는 출세한 것이다. 거기에 밀가루 반죽을 해서 먼저 반죽을 프라이팬에 두르고 미나리와 두릅을 얹으면 부침, 전이 되는 거였다. 거기에다 막걸리 한 잔이면 금상첨화다.

꿈인가. 모두가 꿈이런가. 너도나도 이거저거 꿈속이련가. 꿈에서 깨니 또 꿈이고 깬 꿈도 꿈이련가. 꿈에서 나고 꿈으로 죽어가지만.

산에 사는 맛은 그렇다. 출출세간, 산승(山僧)이 머무는 암자, 물맛 또한 기가 막히다.

바위와 소나무가 있고 졸졸 계곡에서는 물이 흘러 내려간다. 저자거리에 나갔다가도 옹달샘의 물맛 때문에 바로 산으로 돌아오곤 한다.

원래 내 머무는 곳의 암자는 미륵의 배꼽터로 폐사가 되고 도적들이 살던 터였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희미하게 웃곤 했다.

하여 어디 미륵의 모습을 새겨놓은 바위절벽은 없는가. 찾아보니 없었다.그래도 어딘가, 그 신비스런 비결 같은 신비 하나쯤 품고 산다는 게.

비록 당취, 땡초, 땡추이지만 법당 처마의 풍경 소리에 그만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이내 무시선 무처선의 자리에서 빠져나와 부질 없는 짓인줄 알면서도 그럼 냉이 달래나 캐러 가볼까, 하며 새벽아침을 나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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