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행복한 스님이 되고 말았다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4.04.16 09:00 | 최종 수정 2024.04.16 11:40 의견 0

산문 닫힌 저녁

박완호

정암사 수마노탑 목전에서 주저앉고 마는 새들, 적멸은 아득하고 먹먹해지는 새 그림자 따라 고갯마루를 넘는 사내의 뒷모습이 흐릿해진다.

함백산 만항재 운천고도 천삼백삼십 미터 공중을 가로지르는 송전탑 전선을 무감각하게 흐르는 불온한 감각들, 석탑 모서리마다 아슬하게 맺히는 풍경소리

밥상머리에도 끼어들지 못하는

닭 날개 끄트머리 같은 마음속

스스로 환해지려는 갈피만이

산문 안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노을의 수사 따라 표정이 바뀌는 하늘, 애초부터 아무것도 꿈꾸지 않았을 새들의 속내를 빼닮은

적멸보궁으로 가는 쪽문 닫아건 음력 유월 열여드렛날 금요일 저녁 무렵의

박완호∥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 『문득 세상 전부가 되는 누군가처럼』, 『누군가 나를 검은 토마토라고 불렀다』, 『너무 많은 당신』, 『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 外. 김춘수시문학상 등 수상.

# 정암사는 우리 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하나로 정암사라는 이름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기 전에는 갈래사(葛來寺)라 했다. 신라의 대국통(大國統)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사찰이다.

시인은 어찌 갈래葛來까지 갔을까? 갈래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에 있는 마을이름이다. 시를 읽는 순간 행복한 스님이 되었다. 시인에게 연락을 했었다. 나 시 한 편만 보내줘, 해서 시인이 보내준 시였다. 정암사는 갈래마을에 있는 절 이름이다.

불교적 색채가 짙운 시를 읽다보니 詩 속에 내가 들어 있는 기분이다. 속으로 <이게 시를읽는 맛이지>했다. 물론 내 式대로 시 감상, 하기다. 시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독자식대로 읽는 것, 오독誤讀은 즐겁다.

시를 읽으며 시인의 시를 따라가보았다.

적멸보궁이란 寂滅道場적멸도량이라는 뜻이다. 고한을 넘어가면 동해바다가 있는데. 화엄의 바다, 존재의 바다로 가란 얘긴가.


적멸보궁에는 불사리를 모심으로써 부처님이 항상 이곳에서 적멸의 낙을 누리고 있는 곳임을 상징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이 불전에는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佛壇)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곧 법신불(法身佛)로서의 석가모니 진신이 상주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여 적멸보궁의 바깥쪽에 사리탑을 세우거나 戒壇계단을 만들기도 한다.

시인은 힘이 있다. 살아있울 때 이 세상이 적멸보궁이라는 거다.

마치 내가 동쪽 문이 닫힌 정암사에 서 있는 거 같았다. 그리고 내게 화두를 던지는다.

<동쪽 문이 닫혔다. 어찌 그대는 어찌 부처님의 사리를 훔쳐 나올 수 있을꼬?>

순간 나는 픽 웃었다. 문 닫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보지 못했다고? 그건 허공의 새 그림자를 보지 못함이다. 시인이 詩에 갇히지 말라, 화두에 갇히지 말라는 거 같았다. <자아 동문이 닫혔다. 그대 어찌 보궁을 볼 수 있을꼬?>

“나는 내가 정암사 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시인이 생각한 것을 생각해 보았다. ”

정암사엘 가 본 사람들은 안다.

동쪽 쪽문이 닫혔으면 서쪽으로 돌아가면 되었다. 동쪽 쪽문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이고 동쪽 쪽문을 돌아 서쪽으로 돌아가면 그쪽은 무문無門무문, 門이 없는 것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바로 함백산 만항재 운천고도이고 천삼백삼십 미터 공중을 가로지르는 송전탑 전선이고 석탑 모서리마다 아슬아슬하게 맺히는 풍경소리라는 거였다.

[스스로 환해지려는 갈피만이

산문 안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노을의 수사 따라 표정이 바뀌는 하늘, 애초부터 아무것도 꿈꾸지 않았을 새들의 속내를 빼닮은]

그제야 나는 시인의 뜻을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시인이 마치 적멸보궁 부처님 뼈에 대놓고 “내가 있는 곳을, 난 몰라, 난 절대 알지 못할 거야, 네가 모르는 침묵, 적멸 속에서, 너는 계속 가야해, 난 계속 갈 수 없어, 난 계속 갈 거야. ”하며

시를 읽으며 속으로 <아, 시를 오래 쓰면 시인은 선객이 되는구나>하며 고요함에도 시끄러움에도 휘말리지 않는 시인이 부러워졌다. 덕분에 마음 속으로 정암사에도 다녀오고 시에서 보이지 않는 화엄의 바다를 그려보는 한편의 시를 읽었는데 긴 여운이 남는 긴 장편소설을 읽은 듯 하다.

하여 난, 행복한 스님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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