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 사회와 역사의 흐름에 몸을 던진 젊은이의 종착역

_박문구 장편소설 <강릉, 겨울그림자>

조용석 기자 승인 2022.05.25 13:56 의견 0


'사회와 역사의 흐름에 몸을 던진 젊은이의 종착역'

강원도 바닷가에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박문구 작가가 자신의 분신인 한 청년을 등장시켜 사회와 역사의 흐름에 몸을 던졌던 젊은날의 삶을 돌아보는 내용의 장편소설 『강릉, 겨울 그림자』를 선보였다. 소설 속에 나오는 삼척과 강릉은 작가의 고향이자 삶을 키우던 터전이다.

환갑 넘어 은퇴한 주인공 남궁현. 그는 삼척의 자주 찾는 작은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도중 돌연 앞자리에 앉아 다짜고짜 술을 청하는 청년과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의문의 청년은 남궁현의 지난 시절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말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집안의 궁핍함과 획일화된 고교 교육 속에서도 미래를 향한 꿈을 버리지 않고 순간순간 진심을 다하며 모든 것을 견뎌내던 고교 시절. 하지만 갑자기 다가온 페결핵으로 공군사관생도의 꿈을 접고 지방대 국문과로 입학하게 된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급변하는 정치와 사회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발 물러나서 대학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나 주인공에게 사회변혁을 꿈꾸던 고교 친구 ‘박승연’(한서)과 이상형의 여대생 ‘은수우’와의 만남이 숙명적으로 펼쳐진다. 유신정권으로 박정희의 영구집권이 고착화되고 군사독재시절을 건너가야 하는 청춘에게 던져진 시대의 삭막함,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자신의 위치를 찍어나가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정체 모를 청년을 만나면서 그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세밀하게 조망하는 이야기를 타인의 과거인 것처럼 들으면서 차츰 청년의 이야기 속으로 스며드는 자신을 어쩔 수 없이 바라보며 회한에 젖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본심과는 다르게 젊은이의 주장에 겉으로는 동조하지 않는 자신을 움켜쥐면서 거부의 몸짓을 드러내보인다. 결국 자신의 분신인 청년의 가슴에 칼을 꽂아버리지만 청년의 죽음은 주인공 본체의 생명력까지 담보하지 못한다.

사회와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인영들이 스치고 지나가지만 사람의 세포 속에 잠겨 꿈틀대는 그림자는 어쩔 수 없이 그 흔적이 살아 뛰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여럿보다는 혼자 술 마시는 것을 즐긴다’는 박문구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밤 늦어 인근 주점에 앉아 술잔을 대하면 온갖 상념이 떠오른다. 시간의 저편을 이룬 점과 선을 되돌리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광영과 회한이 뒤섞여 있지만 손은 항상 어두운 면으로 뻗게 마련이니 시간 속으로 잠길수록 속만 쓰리다. 가슴을 좀먹는 쓰림을 치유하는 방법을 찾고 헤매다가 결국은 지나간 나와의 대화 속으로 잠겨들어 자신을 낱낱이 분해하고 재결합하는 일에 슬며시 빠져버렸”기에 이번 장편을 시작할 수 있었다며 “아주 깊게. 결국 매듭을 하나씩 연결시켜 깊게 가라앉은 나를 끌어올리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연결된 매듭을 다듬었고, 앞으로 다가올 날의 자취를 미리 당기는 힘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 박문구 소설가는

강원 삼척에서 태어나 초중등 시절 여러 학교를 전전했다. 가톨릭 관동대학교 재학 중 강원일보 신춘문예 소설에 당선되었다. 그 후 강원일보에 중편을 연재했다.

산과 바다 주변으로 배낭 하나로 혼자 헤집고 다니고 있으며 여럿이 마시는 술보다는 혼술을 즐긴다. 지금도 뒤섞인 기억과 희미한 미래를 혼합하는 중이다.

소설집 『환영이 있는 거리』 『안개 사냥』, 장편소설 『투게더』, 공저 『메밀꽃 질 무렵』 등이 있으며 여러 매체에 중단편 소설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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