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로 세상읽기】오르한 파묵의 터키문학

김위영 산업번역 크리덴셜 대표 승인 2022.05.23 00:16 의견 0

What is it to be a color? Color is the touch of eye, music to the deaf, a word out of the darkness. Because I've listened to souls whispering -- like the susurrus of the wind -- from book to book and object to object for tens of thousands of years, allow me to say that my touch resembles the touch of angels. --Orhan Pamuk, My name is red, P 186

색이란 무엇인가? 색은 눈의 감촉, 귀머거리의 음악, 어둠 속의 한 개 단어다. 바람의 속삭임처럼 수천년 동안 책에서 책으로, 객체에서 객체로 속삭이는 영혼을 듣기에 나는 나의 감성이 천사의 감성과 닮았다고 말하고 싶다.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중에서

Orhan Pamuk(오르한 파묵, 1952~ )은 동서양이 만나서 충돌하고 갈등하는 터키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하여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키면서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Snow(눈)>, <The Black boo(검은 책)>, <Innocence Museum(순수박물관)> 등 다수가 있다.

◆ <My Name is Red(내 이름은 빨강)>

이 소설은 동양화와 서양화가 서로 충돌하여 일어나는 갈등이 주제다. 신의 관점에서 만물을 평면적이고 투시적으로 보는 세밀화(Miniature)와, 인간의 관점에서 사실적이고 과학적이며 객관적으로 보는 원근법 사이에 일어난 갈등과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즉, 동양과 서양 회화의 충돌과 대립, 보수와 진보, 절대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 등 상충되는 여러 가치를 예술가들의 고뇌 안에 그렸다. 파묵은 이 책에 대해 “이슬람 세계의 고전적이고 전통적 시각예술이 서구의 영향으로 어떻게 사라져갔는지 보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소설은 총 5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매 장마다 화자의 이름이 붙어있다. 예컨대 ‘제1장: 나는 시체이다’, ‘제31장: 나는 빨강이다’, ‘제59장: 나는 살인자라 불린다’…. 동식물, 악마, 물건, 시체, 심지어는 색깔까지 나서서 말을 하고 듣는다. 커피, 여자를 둘러싼 사랑, 이슬람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_이슬람예술의 세밀화란?

세밀화는 사람이나 동물들의 모습을 아주 작게 그려서 역사적 이야기나 삶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하고자 하는 이슬람문화권의 특징적인 예술이다. 세밀화가는 신의 시선인 알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그려 넣는다는 사명감으로 그림을 그린다. 신의 눈을 대신하고 있기에 화가 개인의 화풍이나 개성이 그림에 드러나는 행위를 극도로 꺼렸다. 원근법과 입체감을 사용하지 않고 생동감을 줄이는 방식으로 우상숭배의 위험성을 회피하려고 시도했으며, 이것이 세밀화로 나타났다.

최고 경지의 세밀화가는 눈이 보이지 않고도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수준의 화가이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경지에 올라야 최고의 세밀화가가 된다. 이 수준이 되면 화풍의 변화를 막기 위해 스스로 눈을 찔러 실명했으며, 다른 세밀화가의 존경을 받았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없는 시대인 16세기 오스만제국의 화가들은 자기 작품에 서명이 없었다. 화가는 신이나 술탄 등 절대자들의 영광을 그리는 장인에 불과했다.

I am nothing but a corpse now, a body at the bottom of a well. Though I drew my last breath long ago and my heart has stopped beating, no one, apart from that vile murderer, knows what's happened to me. --P 3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누워 있는 몸에 지나지 않는다. 마지막 숨을 쉰 지도 오래되었고, 심장은 멈춰버렸다. 나를 죽인 그 비열한 살인자 이외에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Dogs do speak, but only to those who knows how to listen. --P 11

개도 말을 한다. 단지 들을 줄 아는 사람에게만 할 뿐이다.

Painting is the silence of thought and the music of sight. --P 59

그림은 이성의 침묵이며, 관찰의 음악이다.

Blindness is silence. If you combine what I've just now said, the first and the second questions, ‘blindness’ will emerge. It's the farthest one can go in illustrating; it is seeing what appear out of Allah's own blackness. --P 60

눈이 먼다는 건 고요함이다. 내가 조금 전에 말한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제를 합치면 눈 먼 의지가 나온다. 설명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다. 알라신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To know is to remember that you've seen. To see is to know without remembering. Thus, painting is remembering the blackness. --P 76

안다는 것은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본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둠을 기억하는 것이다.

Thus, Allah's vision of His world only becomes manifest through the memory of blind miniaturists. --P 80

즉, 알라신이 세상을 어떻게 보았는지는 장님 세밀화가들의 기억을 통해 명확해진다.

Age means not only straining oneself climbing hills, but also, I gather, not being so afraid of death. It means a lack of desire, entering into a slave girl's bedchamber, not in a fit of excitement, but out of custom. --P 95

나이를 먹어 늙는다는 건 단지 언덕을 힘겹게 올라가는 것만이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욕망의 결핍을 의미한다. 하녀의 침실에 들어가는 것은 욕정이 아니라 관습의 파괴하기 위해서이다.

Using perspectival techniques is like regarding the world from a window. --P 117

원근법을 시용하는 것은 이 세상을 창문을 통해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Legends and paintings recount how men are distinct from one another, not how everybody resembles one another.” said the wise illustrator. “The master miniaturist earns his mastery by depicting unique legends as if we were already familiar with them.” --P 126

“전설이나 그림은 서로 닮은 것이 아니라 닮지 않은 것을 이야기한다”고 현명한 세밀화가가 말했다. “세밀화의 거장들은 독특한 전설들을 닮은 것처럼 그림으로써 대가가 되었다.”

Weeping softened my heart and I sensed that I was crying because it made me a better person. --P 144

나는 우는 것이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선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울고 있다고 느꼈다.

No one ought to compete with Him. The greatest of sins is committed by painters who presume to do what he does, who claim to be as creative as He. --P 160

누구도 그분과 경쟁할 수 없다. 화가들이 그분이 했던 일을 시도하는 것, 그분처럼 창조자가 되려고 하는 것은 커다란 죄악이다.

The whole world was made up of color, everything was color. Just as I sensed that the force separating me from all other beings and objects consisted of color, I now knew that it was color itself that had affectionately embraced me and bound me to the worlds. --P 229

모든 세계가 색으로 만들어지고, 모든 것이 색이다. 다른 모든 존재와 객체에서 나를 구별하는 힘이 색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던 것처럼, 지금 나를 사랑으로 껴안고 세계와 연결해주는 것도 색이란 걸 깨달았다.

It's not the content, but the form of thought that counts. It's not what a miniaturist paints, but his style. Yet these things should be subtle. --P 291

사상이란 그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 중요하다. 세밀화가가 무엇을 그렸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그린 방식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은 추상적이어야 한다.

To paint is to remember. --P 303

그림을 그리는 것은 기억하는 것이다.

Time doesn't flow if you don't dream. --P 382

꿈꾸지 않으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An artist should never succumb to hubris of any kind,” said Butterfly, “he should simply paint the way he sees fit rather than troubling over East or West.” --P 400

“화가는 어떠한 오만에도 굴복해서는 안 되네. 화가는 동방과 서방에 대해 고심하기보다는 자기에 맞게 보이는 방식으로 단순하게 그려야 한다네."

“For the rest of your lives you'll do nothing but emulate the Franks for the sake of an individual style.” I said. “But precisely because you emulate the Franks you'll never attain individual style.” --P 401

“자네들은 남은 생을 자신의 화풍을 갖기 위해 유럽인들을 모방할 거야. 그렇지만 유럽인들도 모방하기 때문에 끝내 자신의 화풍도 가질 수 없는 것이지.”

◆ <Snow(눈, 2002)>

세속주의와 이슬람이 충돌하는 터키의 현실을 깊은 통찰력과 정교한 장치로 그려낸다. 아르메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터키의 동북부 도시 카르스를 배경으로, 현대화를 지향하는 카멜주의자들과 보수적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간의 충돌로 사흘 만에 막을 내린 국지적 쿠데타를 커다란 줄기로 삼아 전개되는 혁명과 사랑의 시이다.

As Ka knew from the beginning, in this part of the world faith in God was not something achieved by thinking sublime thoughts and stretching one’s creative powers to their outer limits; nor was it something one could do alone; above all it meant joining a mosque, becoming part of a community. --P 66

카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세상의 이 지역에서 신을 믿는다는 것은 가장 숭고한 사고를 하고 창조력을 극한까지 펼쳐서 얻는 것이 아니다. 홀로 만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어떤 집단에 들어가서 어떤 단체의 구성원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I felt guilty about having refused all my life to believe in the same God as the uneducated—the aunties with their heads wrapped in scarves, the uncles with the prayer beads in their hands. There’s a lot of pride involved in my refusal to believe in God. But now I want to believe in that God who is making the beautiful snow fall from the sky. --P 105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히잡을 쓴 여자들과 손에 염주를 든 남자들처럼 같은 신을 평생 믿지 않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신을 믿는 것을 거부한 데는 많은 오만이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저기 하늘에서 아름다운 눈을 내리게 하는 신을 믿고 싶다.

But that God is not among you. He’s outside, in the empty night, in the darkness, in the snow that falls the hearts of outcasts. --P 105

하지만 그 신은 당신들 사이에는 없다. 신은 밖에, 텅 빈 밤에, 어둠 속에, 버림받은 사람들의 가슴에 내리는 눈 속에 있다.

Let’s have one secret we can share. It’s the best way to begin a friendship. --P 124

우리가 공유할 비밀로 하자. 비밀을 공유하는 것은 우정이 시작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arly in his youth, Ka had firmly believed that there could be no higher honor than to die for an intellectual political cause or for what he had written. --P 320

청년시절에 카는 지적이며 정치적인 목적이나 자신이 쓴 시를 위해 죽는 것보다 더 숭고한 영광은 없다고 믿었다.

Women kill themselves because they hope to gain something. Men kill themselves because they’ve lost hope of gaining anything. --P 431

여자들은 무언가를 얻을 희망으로 자살을 한다. 남자들은 무언가를 얻을 희망이 상실할 때 자살을 한다.

Human beings are god’s masterpieces and suicide is blasphemy. --p 461

인간은 신의 걸작이다. 그리고 자살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 <The Black Book(검은 책, 2006)>

사라진 아내의 행방을 좇는 남자의 이야기와, 아내가 사랑하는 다른 남자의 칼럼이 한 장씩 교차하는 <검은 책>은 자아와 정체성이라는 파묵의 주제의식을 실험적 형식으로 풀어내어 큰 파장을 일으킨 문제작이다. 또한 현대를 사는 세 남녀의 이야기에 이슬람 고전을 접목하고, 동서양이 만나는 도시 이스탄불에 얽힌 신화, 전설, 이야기뿐 아니라 시대적 배경인 1980년대 터키의 대중문화와 언더그라운드 문화, 서양 문학을 서로 맞물려 얽히게 해 독자에게 독특한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We knew, for example, that most of the Jews in America and Western Europe were descended from the Jewish kingdom of the Khazar, which had ruled the area between the Volga and the Caucasus a thousand years ago. We also knew that the Khazars were really Turks who had converted to Judaism. But what we did not know was that Turks were as Jewish as Jews were Turkish. --P 126

예를 들면, 서유럽과 미국에 사는 대부분의 유대인은 1000년 전 카프카스산맥과 볼가강 사이를 지배했던 하자르의 유대왕국 후손이라고 알고 있다. 하자르 사람들이 실제로 유대교로 개종한 터키인들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것은 유대인이 터키인인 것만큼 터키인도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I had not been myself during the first half of my life because I wanted to be someone else, and now I was going to spend the second half of my life being someone else who regretted all those years she had spent not being herself. I couldn’t help but laugh. --P 204

삶의 초반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나 자신이 되지 못했고, 중반은 나 자신이 되지 못한 그 세월을 후회하며 또 자기 자신이 아닌 사람으로 보낼 거라는 생각이었지. 나는 웃음밖에 나지 않았어.

Even though you knew full well that half our of nation’s youth marry their uncle’s daughters, and the other half their aunt’s sons, you still went ahead and wrote those disgraceful things about the perils of inbreeding. --P 382

우리나라 사람들이 절반은 이모의 아들, 절반은 숙부의 딸과 결혼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계속하여 근친 간 결혼의 위험에 대해 수치스러운 글을 썼다.

As I wished to be a real sultan, and not a shadow, it was now clear to me that I should resolve to be myself and not someone else; where upon I decided to free my mind of books—not just the ones I had read over the previous six years but everything I’d ever read in my life. --P 425

나는 그림자가 아니라 진정한 술탄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결심해야 하는 것이 분명해졌다. 나는 지난 6년 동안 읽은 책뿐만 아니라 평생 내가 읽은 책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결심했다.

To be myself, and not someone else, it was incumbent on me to free myself from all those books, all those writers, all those stories, all those voices. This took me ten years. --P 425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나는 그 모든 책에서, 그 모든 작가에게서, 그 모든 이야기에서, 그 모든 목소리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러는 데 10년이 걸렸다.

◆ <The Museum of Innocence(순수박물관, 2009)>

주인공 케말은 단 44일 동안 사랑을 나눈 친척 여동생 퓌순을 평생 동안 사랑하면서 그녀와 관련된 추억을 간직한 물건들을 모으고, 결국 그 물건들을 전시할 박물관을 만든다. 오르한 파묵은 실제 순수박물관을 만들어 2012년 개관했다.

If I had recognized this instant of perfect happiness, I would have held it fast and never let it slip away. --P 1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이해했더라면 그 행복을 부여잡고 절대로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A woman can love a man like crazy for years without once making love to him. --P 51

한 여자가 한 남자와 사랑을 나누지 않고도 몇 년 동안 미친 듯이 사랑할 수 있어.

During my eight years of going to the Keskins’ for supper, I was able to squirrel 4,213 of Fusun’s cigarette butts. --P 395

케스킨 씨네 집 식탁에 앉아 있던 8년 동안 나는 퓌순이 피운 4,213개의 담배꽁초를 가져와서 모았다.

There is something you must believe, and I expect you to behave accordingly. At no point during my marriage with Feridum did we have married relations. You absolutely must believe this! In this sense I am a virgin. I shall be with only one man in my life, and that man is you. --P 457

당신이 믿어야 하고 이에 따라 행동해 주길 기대할게. 페리둔과의 결혼생활 내내 우리는 부부 관계가 없었어. 이것을 꼭 믿어야 해! 그런 의미에서 난 순결해. 내 생애에서 단 한 사람과 함께할 것이고, 그게 당신이야.

That was the night I realized that my museum would need an annotated catalog, relating in detail the stories of each and every object. There was no doubt that this would also constitute the story of my love for Fusun and my veneration. --P 512

그날 밤 나는 박물관에 있는 모든 물건들의 이야기에 관련된 자세한 주석이 달린 카탈로그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퓌순을 향한 나의 사랑과 그녀에 대한 사모가 포함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Istanbul; Memories and the City(이스탄불; 추억 그리고 도시, 2006)>

다섯 살 때부터 스물두 살 때까지 화가가 꿈이었던 저자의 회고록 성격을 띠고 있다. <이스탄불>은 작가의 성장기, 청년시대와 더불어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이스탄불이란 도시의 비애, 폐허, 몰락 그리고 변방 이미지와 잘 맞물려진 텍스트이다. 파묵의 할아버지가 공학자로서 터키의 철도 건설에 참여하여 대부를 이룬 재산가이며, 아버지나 삼촌들이 수없이 사업에 실패해도 건재할 수 있는 재산의 샘물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If the city speaks of defeat, destruction, deprivation, melancholy, and poverty, the Bosphorus sings of life, pleasure, and happiness. Istanbul draws its strength from the Bosphorus. --P 47

이 도시가 패배, 파괴, 좌절, 침울, 빈곤을 말한다면 보스포루스는 삶, 기쁨, 행복을 노래한다. 이스탄불의 힘은 보스포루스에서 비롯한다.

But as my reason reasserts itself, I remember that I love this city not for any purity but precisely for the lamentable want of it. --P 320

그러나 나의 사유가 거듭 확인한 것처럼 내가 이 도시 이스탄불을 순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애도할 만한 부족함 때문에 사랑한다고 기억한다.

“I don't want to be an artist.” I said. “I'm going to be a writer.”

“화가가 되지 않겠어요. 나는 작가가 되겠어요.”

◆ 동서양 문명의 교착지인 터키문학은 흥미롭다

오르한 파묵은 노벨상을 수상하고 2009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강의를 통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Reading a novel is the act of investigating what the secret center of the novel is and enjoying the aesthetic pleasure of the details along the way.”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소설의 비밀스러운 중심을 탐구하고, 그 과정에서 야기되는 상세함의 미학적 기쁨을 즐기는 행위이다.”

“I believe the greatest height a novelist can attain is the ability to construct the form of the novel as an enigma. Writing or reading a novel requires us to integrate all of our knowledge about the world.”

“소설가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소설의 형식을 수수께끼로 구성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쓰거나 읽는 것은 세상에 대한 모든 지식을 통합하는 것을 요구한다.”

<내 이름은 빨강>에는 은유와 알레고리로 가득 찬 이슬람 고유의 설화와 민담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그로써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의 성찬을 누릴 수 있다. 세밀화가가 자신의 작품에 서명을 남기지 않지만 무심코 답습적으로 그린 정형화된 귀의 그림에 화가의 화풍이 남겨진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세밀화가들은 전통을 따르고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세상에 완전히 순수한 것은 없듯이 그 전통도 옛날에 중국과 몽골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무리 전통을 고수하려 해도 변화는 생겨난다는 모순을 작가는 소설을 통해 이야기한다.

터키는 역사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최접점에 있는 문화의 교류지였다. 이슬람문화와 기독교문화, 그리고 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 또한 유럽과 아시아가 서로 충돌한 지역으로, 성소피아사원만 보더라도 1000년간 기독교 성당이었다가 나중에 500년간 이슬람 사원이 된다. 터키문학사를 통상적으로 이슬람 수용 이전의 터키문학과 이슬람 수용 이후의 터키문학, 그리고 서구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터키문학으로 구분한다. 이슬람 수용 이전의 터키문학은 터키 고유의 감성이 내포되어 있는 구비문학과 기록문학으로 나뉜다.

동양과 서양의 융합지역으로서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터키는 다른 대중문화와 빈번하게 접촉하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갈등을 겪었다. 이러한 갈등 중 가장 두드러진 요인의 하나는 동서양 문명의 충돌로 인한 갈등이다. 오르한 파묵의 여러 소설은 이슬람과 서구문화의 충돌로 야기되는 갈등과 긴장관계의 문제를 풀어내고 있다. 동서양이 공존하는 터키와 이슬람 세계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도 오르한 파묵의 소설은 한번쯤 읽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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